모든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정이다. 또는, 모든 여행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종국에 짊어져야 할 (미래를 모르는) 가능세계의 집합이지 않나.
출국하는 날은, 본가에서 인천공항까지 부모님께서 태워다 주셨다. 단기간동안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펐지만, 아무렴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슬픈 감정이 조금 더 컸다. 그간 나를 편안하게 해줬던, 나를 배려해줬던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정말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련의 기간이 앞으로 다가오니 무서움도 다가왔다.
너무 바빴던 입국기를 조금씩 정리하려하다 보니, 어디든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똑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도와주는 사람도 사실 없는 이 무명의 바다에 던져져 있다는 감정이 들어 우울함에 빠져들 뻔 한다. 아마 혼자 모든걸 빠르게 처리하려 하다보니 약간 지쳤나보다. 다시 감정을 되짚어보면 오히려 행운이 많았던 것 같다.
델타항공의 운항 중 첫 번째 여정이었던 인천-미니애폴리스 노선 자체는 항공기도 만족스러웠고, 승무원을 비롯한 탑승객도 모두 좋았다. 기내식은 정말 형편없었으니, 모두 미리 긴장하셔야한다. 12시간의 비행을 거쳤는데, 3시간부터 허리가 아파오는 고비가 있다. 계속 자다가도 깨고, 자다가도 깨고, 이 일정이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jet-lag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단연 이 비행기를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때였다.

미니애폴리스 공항에 내려서 무거운 캐리어 2개를 이끌고 나간다. 미니애폴리스 공항에서는, 국제선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나는 J-1비자를 여권에 스탬핑했고, DS-2019나 오퍼레터와 같은 서류들도 다 챙겼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고,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질문 후기들을 읽어보면서 나름의 답변을 준비했다. 긴장한 채로 나왔으나 입국심사관은 내게, 'Are you researcher?' 'Have you ever visited the USA?' 라는 두 가지 질문만을 하고 나가라고 했다. 긴장이 풀리고 나가니, 다시 경유하는 항공편으로 넘어가면 되는 시점이었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 나온다.

아무튼, 맛없는 기내식을 뒤로 한 채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서 정말 카페인이 간절했었다. 사악한 아메리카노 가격에 경악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뒤의 이야기에 후술되겠지만, 이게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한 이후 30시간 동안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미니애폴리스공항은 크지 않은 공항이지만, 국제선 도착 게이트로부터 직선 형태로 환승게이트 D, C, B, A가 열을 지어있었고, 나는 그 중 A8게이트였기 때문에 20분 내내 걸었어야 했다. 걷고 나니 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

환승게이트에 노을이 지는 사진을 찍었던 게 6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야하는 사우스벤드 공항으로 가는 연결편이 8시 출발이었기 때문에, 근처의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다. 이때는 내 여행 일정이 굉장히 순탄하다고 생각했다.

커넥션을 기다리고 있다 보니 이제서야 혈혈단신인게 온 몸의 혈관으로 느껴져서 이때 울 뻔 했다. 그런데 여기서 울면 너무 웃길 것 같아서 감정이 갑자기 사라졌었다. 이때는 내가 다음 연결편이 결항이 될 지 몰랐었다. 8시도 아니고 1시간 지연이 된 채 9시 근방이 되어 겨우 온보딩을 할 수 있었는데, 기내에서도 약 20분을 대기했으나 결국 사우스벤드의 thunderstorm으로 인해 이륙이 허가되지 않아 비행편을 취소하며, 기상문제이기 때문에 델타에서는 환불 또는 다음 항공편의 자동 신청이 힘들다고 했다. 이 낯선 타지의 땅에서 헤매고 있다가, 정말 공항에 사람이 없어져가는 것을 몸소 느끼니 공포감도 몰려왔다.

이때 너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한 노부부, Jenny와 Toby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는지, 한국에서 왔다, 내 며느리도 한국 사람이다, 그러냐 인연이다, 나는 미니애폴리스에 사는데 우리집에서 자고 가겠느냐, 라는 희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Jenny를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인 것 같다.

칠흑과도 같던 하늘과 내 마음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이후, Jenny와 Toby랑 같이 사는 그들의 며느리 및 아들 부부를 볼 수 있었다. 따뜻한 한 미국 집에 정말 너무 착한 젊은 부부, 한솔님과 Chris 부부를 만나뵐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게임도 같이 하고, 정말 편하게 자리를 만들어줘서 오늘의 결항 이슈에 관한 걱정이 해소되었다. 재밌게도 한솔님과 나는 동향이었고, Chris도 그 곳에서 영어 선생을 하다가, 코로나 이후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솔님으로부터 자신감을 배울 수 있었다. 참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내가 남들에게 뭔가를 잘 해주지 못했는데, 아주 작은 카르마가 쌓여서 한 번에 터졌으니, 이젠 내가 덕을 계속 쌓아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따뜻한 미국에서의 american hospitality를 경험하고나서, 나는 이제 사우스벤드로 가는 루트를 찾아야 했다. 현실로 돌아간다.

가장 간단한 루트는 어제 취소되었고, 다음 항공편은 오후 8시까지 동일하게 기다려야 하나 이 표 역시 비어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어쨌든 우회하여 가는 루트만이 나에게 주어졌었다. 두 루트가 있었는데, 특히 루트1의 경우 남의 집에 거주하는데도 아침 5시 반에 출발하는 우를 범하기 쉽지 않았어서, 매우 비효율적인 아틀란타 경유 루트2를 택했다.

이후 오전 8시에 다시 미니애폴리스 공항에 도착해, 동일한 출발 심사를 마치고 들어갔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아틀란타까지 가는 항공은 매우 순탄했다. 그러나,..

이놈의 얄궂은 날씨 이슈는 아틀란타에도 기어이 씨를 뿌리더니 사우스벤드행 항공편을 2시간 지연시켰다. 어거지로 온보딩은 시작했지만 아무도 예후를 예측할 수 없었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약간의 소강상태로 보였을 때 이륙을 했다. 어쩌면 천운이지 않는가. 이 비가 와도 어쨌든 비행기는 안전하게 운행했는데, 불행 중 정말 다행이었다.


사우스벤드 공항은 매우 작은 소박한 공항이었다. 나는 에어비앤비 역시 잡지 못했기에, 이민국에 연락하여 도와달라고 하니, 근처 잠시 단기간 동안 비어있는 주변 호스팅이 있다고 하여 3주치의 비용을 지불하고 거주할 수 있었다. 이게 약 220만원의 비용이 들었던 그 하우징이다.

도착했던 하우징은 준수했다. 이런 원룸형 방을 studio라고 하는데, 난 이것만으로도 꽤 괜찮다고 느꼈다. 30시간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서, 맥주에 치킨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탭비어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점원과 떠들다가,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대학원생커플과 1시간 정도 스몰톡을 하고 번호를 교환했다. 사람들이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주조를 했던 점원이 만들어 준 저 작은 술이 너무 맛있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매우 귀여운 귀걸이를 하고 계셨다. 인지했더라면 스몰톡을 한 번 더 했었을 것 같다.

아참, 그리고 Jenny는 끝까지 나를 걱정해줬고, 노터데임에 도착하고 또 연락을 드렸다. 나도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큰 사람이고 싶었다.

시차 적응은 무참히 망했고, 밤을 조금 새다 일찍 나온 참에 산책을 하니 아름다운 학교판이 보였다. 이 날은 룸 투어를 하러 무려 4개의 하우징을 돌아다녔던 날이다. 룸 투어와 SSN 발급 등의 이야기는 다른 편에 싣겠다.




학교 내에 들어가보니 아름다운, 그리고 내가 봤던 그 유명한 Golden Dome을 볼 수 있었다. 난 이방인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에는 구성원으로서 자리할 수 있을까 라는 사념을 안은 채 발을 돌려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고, welcome to america를 호되게 겪었기에 너무 지쳐있었다. 사실 지금도 지친다.
이 글을 쓰기 10분 전에 우리 연구실에 있었던 은서와 카톡을 했다. 공감도 해주고, 아마 내가 매일 일하다가 일과는 동떨어진 매우 새로운 생활과 백수같은 라이프를 겪다 보니 좀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맞기도 하고, 내가 이 외국에서 잘 살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모름지기 내가 잘 하면 되는데, 자신감이 생기다가도 잠깐 지고, 복잡하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내 best friend Y. J.은 나보고 너무 외로움을 느끼는 시점이 빨리 왔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인턴 중인 그녀는 한달 쯤 되었을 때 느꼈다고 했다. 내가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어서 그들이 없어진 이 공백에 대해 굉장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 언젠간 이 마저도 반성하며 다른 이방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 나에게 연락을 주시면 감사드리겠다. 아무튼, 다음 글까지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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